2005년 9월 15일 목요일

제대로 지워내는 일도 훌륭한 아이디어다!

<@NHN@LINEBREAKER@NHN@>

Agency_Full Jazz, Sao Paulo
Art Director_Henrique Mattos
Copywriter_Paula Junqueira, Fabiano Soares
Photographer_Dionisio
Illustrator_Elias Abdalla

위의 그림은 브라질 남부 상파울루에 있는 광고 회사 Full Jazz에서 제작한 Faber-Castell의 시리즈 광고입니다.
브라질은 Faber-Castell과 비교적 밀접한 관계에 있는 나라이기도합니다.
1994년 Faber-Castell은 브라질 상파울루에 첫 교두보를 마련한 이래 지금은 약 2,900명의 브라질 사람들이 상카를로스나 상파울루의 Faber-Castell에 근무합니다.
이것은 약 5,500명의 Faber-Castell 직원의 절반이 넘는 숫자입니다.
규모면에서 볼때 브라질은 Faber-Castell의 전초기지 역할을 톡톡히 담당하고 있습니다.
Faber-Castell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240년 전인 1761년부터 시작됩니다.
1761년은 모짜르트가 다섯살의 나이로 그의 첫번째 음악을 작곡했던 해이기도 합니다.
그 해 독일 Nuremberg근교 Stein에서 캐비넷 메이커였던 Kaspar Faber는 흑연의 분말에 황을 혼합하여서 "Bleyweißsteffte"이라는 그의 첫번째 연필을 만들게 됩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연필의 전형이 된 육각형 연필도 그가 맨처음 생각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2대인 A.W.Faber가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아 공장을 확장하고 서서히 명성을 넓혀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Faber-Castell은 1849년 뉴욕에 첫 브랜치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해외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지금은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크레용에서부터 만년필에 이르기까지 2000개의 품목을 생산하는 세계적인 메이커로 성장했으며, 현재 8대 후손인 Count Anton Wolfgang von Faber-Castell이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Faber-Castell에서 1년에 생산하는 연필만 1,800백만 자루가 넘는다고하니, 말그대로 연필의 대명사가 된 셈입니다.

지금과 같은 흑연심 연필의 역사는 40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람들은 영국 보로우델에서 생산되는 질좋은 흑연을 막대모양으로 가공해서 사용했었습니다.
그 후로, 연필의 수요는 점차로 늘어나는 반면, 상대적으로 흑연의 확보가 날이갈 수록 더 어렵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흑연을 대체할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고, 마침내 프랑스의 니콜라스 자크 콩테에 의해 1794년 새로운 연필심 제조 공법이 개발되었습니다.
콩테가 개발한 이 프랑스식 연필은 흑연 분말을 도자기용 점토와 혼합, 고온으로 구워내는 방법입니다.
1795년 콩테는 이 연필심 제조 공법으로 특허를 받았고 이것이 현대적 개념으로서 연필의 시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반면 연필을 지울 수 있는 지우개는 1772년 영국의 화학자인 J.프리스틀리가 고무로 부터 그 원리를 발견했다고 전해집니다.

연필과 지우개! 이처럼 궁합이 잘맞는 사물도 별로 없을 듯 합니다.
위의 Faber-Castell 광고는 바로 이런 생각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Ideas appear with pencil and eraser.
아이디어는 연필과 지우개와 함께 나타난다.

첫번째 광고는 아이맥의 초기 모델의 스케치가 등장합니다.
이 1세대 아이맥의 경우, 특유의 컬러와 반투명 디자인으로 세계 각 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후 호빵맥이라 불리우는 하얀색 아이맥을 거쳐 얼마전 애플컴퓨터는, 모니터에 본체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아이맥 G5를 선보였습니다. 바로 이 신형 아이맥의 형태가 위의 아이맥 모니터의 뒷통수를 지워낸 모습과 유사합니다.
Faber-Castell의 광고를 제작한 광고회사가 이 아이맥 디자인의 변화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 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만, 디자인이라는 것이, 뭔가를 더하고 새롭게 포장하는 일만이 아니라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필로 스케치해서 아이디어를 완성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이미 완성된 스케치를 지워내는 것도 또한 훌륭한 디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국적광고회사 레오버넷의 창시자인 레오버넷(Leo Burnett)은 아이디에이션(Ideation) 능력을 무엇보다 중요시했습니다.
그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조합하여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으로서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즉, 좋은 아이디어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의 새로운 조합'이라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조합은 기존의 아이디어에 새로운 생각을 결합시키는 방법을 의미합니다.
또한, 기존의 아이디어나 생각에서 필요없는 부분을 지워내고, 버리는 것도 포함됩니다.
우리는 좋은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내기위해 참 많이 노력합니다.
밤 새워 아이디어 스케치를 해보기도 하고, 새로나온 책을 꼼꼼히 뒤져보기도 합니다.
새로운 통찰력을 얻기위해서 머리를 쥐어짜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빅 아이디어가 탄생되는 경우는 그다지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결국 어느 특별한 곳에 매장되 있는 '흑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이미 존재한 다는 사실입니다.
연필을 발명한 콩테에게서 우리가 배울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전까지는 연필 만드는 방법을 사람들은 땅 속에서만 찾았습니다.
그러나 콩테는 땅 속이아니라 마음 속에서 그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것이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의 조합이란 말을 앞서서 증명해 보였습니다.

지워내고, 버림으로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 이것은 대단한 용기이자 모험이기도 합니다.
뒷통수가 큰 일명 CRT모니터를 지워내고 초박형 액정 모니터를 생각하는 것은,
아무사람에게나 보이는 뻔한 결과물이 아닐 것입니다. 그 제품에 대해서 끊임없는 고민과 통찰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여기까지는 누구나 같은 생각과 결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새롭게 탄생되는 아이디어를 보호하고 실천하는 능력입니다.
가장 바보는 '나도 저런 생각했었는데...'라고 말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또한 실천의 결과인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 광고는 기존의 유선전화기에서 선을 지워내고, 무선전화기를 만들었습니다.
세번째 광고는 기존의 일체형 수영복에서 중간을 지워냄으로써 대담한 비키니 수영복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지우개를 들고 지워내면 뭐든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입니다.
다음은 제가 몇 년전에 '지우개'에 관해 끄적인 생각입니다.

지우개

나의 하루를 채 쓰기도 전에
지워야할 것들이 많아 힘들었지
하루 치의 이기심,
또 그만큼의 자존심과
다른이에 상처를 준 많은 단어들

온전히 지우고 다시 써내려 갈 수 있다면
내 몸이 닳아 없어져도 행복하겠지

내게 불필요한 것들을
억지로 지워내다
때론 찢어지는 고통을 견뎌내야 하겠지만

아문 상처 사이로 새 살이 돋아나듯
내 남루한 기억들을 걷어내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하루를 잘 써내려가는 일보다
하루를 잘 지워내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을 깨닫는 날

지우개 똥보다 못한 욕심때문에
난 몇 번이고 지우고 다시 썼던가

빼곡히 채워진 성급함보다
텅 빈 여백의 쓸쓸함을 즐길 수 있을 때까지
욕심없이 버려야한다
깨끗하게 지워야한다

_임헌우 (1998)

지우개 똥보다 못한 욕심과 생각이라면, 과감하게 지워내야합니다.
역사가 240년이나된 Faber-Castell이라면 얼마나 하고 싶은 얘기가 많겠습니까?
특히, 한 해 1,800만 자루의 연필을 만들어 낸다면 또한 얼마나 자랑하고 싶겠습니까?
이 모든 생각들을 지워내고 연필과 지우개 본연이 갖는 의미에 충실했습니다.
오히려 많은 것들을 제대로 지워냄으로써 1등 회사다운 배포와 용기, 그리고 자신감으로 그만큼의 공간을 채우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를 잘 내고, 찾는 일만큼 기존의 생각들을 제대로 지워내는 일도 중요한 것입니다.
롱스커트의 밑 단을 지워내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미니스커트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카세트의 전원플러그를 지워내지 않았다면, 지금의 워크맨은 꿈도 꾸질 못했을 겁니다.
칼 날을 지워내지 않았다면 스타워즈의 멋진 광선검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구요.
형태가 주는 아우라를 지워내지 못했다면, 지금의 추상화는 나타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뭔가를 짜꾸 덧붙여서 생각을 복잡하게 하지말고, 지우개를 들고 기존의 아이디어를 지워나가 봅시다.
저는 후배 디자이너가 작업한 것들을 디렉팅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제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많은 디자인 요소들을 걷어내는 일입니다.
몇 가지 요소들만 정리되어도, 꽤나 좋은 결과물이 나옵니다.
지워내다 보면 생각의 방향이 명쾌해집니다. 또한 단순함이 주는 매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동양화의 여백이란 것도 어쩌면 복잡한 생각들을 지워낸 여유로움에서 나온다면 억지 주장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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