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화여자대학교 조형대학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단 한 번 뵈었던 분.
"당신이 우리 홈페이지를 만드는 사람이냐?..디자인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며, 한시간정도를 다른 교수들도 있는 미팅 가운데 한시간여를 나한테 열변하신 분.
내 기억속에는 괴짜... ㅋㅋ 로 기억되는 분이 디자인정글에 이달의 디자이너 (2005.05)로 뽑히셨네.
5월달이면 내가 한참 홈페이지때문에 이화여자대학교를 들락날락 할땐데... 암튼 그 분의 대한 글이 있어 디자인정글에서 퍼왔습니다. ㅎ ㅎ
이 땅의 외계인으로 살아온 45년 디자인 인생, 김영기 디자이너 [출처.
매거진정글]

45년 동안이나 디자인을 하고 있으면서, 디자이너라는 말보다 '외계인'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사람이 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는데다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힘들다는 말을 결코 입밖에 내지 않고 살아온,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원장 김영기 교수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를 '외계인'이라 칭하는데 부끄러움이 없다.
한가람미술관에서는 그의 40년 디자인 역사와 더불어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이는 'Tao of design'전이 열려,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커다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굳게 다문 입과 고집스러운 눈매가 인상적인 김영기 디자이너는, 바쁘게 살아 온 날들 만큼이나 수많은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여러 편의 디자인 이론서를 낸 교육자로써 그를 기억하고 있던 사람이라면, 여기를 주목해 보자. ‘이론을 하는 교수, 책을 많이 내는 교수’ 김영기가 아닌 디자이너로써의 그의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스스로의 작업을 알리는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찾는 것에 열정을 쏟아왔다고 말을 한다. 한국 디자인계의 산 증인이자 크리에이티브 발전소장 '김영기 디자이너'를 소개한다.
취재 | 권영선 기자

[정글과의 일문일답]
정글: 그래픽 디자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걸쳐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왕성한 작업활동을 해오고 있는데, 그 동안의 작업과 활동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달라.
김영기: 능력이 미치는데까지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현대인의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자꾸 영역에 구속 지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현대인으로 계몽되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가 한 분야에 규정된다는 것을 원치 않는다. 여기에 있는 작품에서 어느 것 하나도 다른 사람의 것들을 빌린 것이 없다. 글, 그림, 일러스트, 제품, 심지어 제품 네이밍까지도 말이다.
사진도 찍고, 교육자로써 학생을 가르치고, 광고 디자인도 하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쉴새 없이 돌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김길동, 외계인'이라고 부르곤 하지만, 이런 일들 모두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있기 때문에 기분이 좋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확고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임하며, 기업가로써 일을 할 때는 최고의 컨설팅협력자가 되기 위한 각오로, 또한 디자인을 할 때에는 최고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나 자신을 알리기보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내가 하고 싶은 작업들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작업한 여러 측면들을 이번 전시회를 통해 보여줄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많은 분들이 나의 작업에 관심을 가져주었고,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의 작업물들을 되돌아 보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정글: 컴퓨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것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김영기: 15년 전에 최고 사양의 컴퓨터를 비싸게 주고 샀다. 그때부터 컴퓨터를 쓰기 시작했다.
여기에 있는 것도 모두 내가 직접 컴퓨터 작업을 한 것이다. 어느 것 하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한 것이 없다.
지금 30대 후반인 사람들이 대학교를 졸업했던 90년대 초반에는 컴퓨터가 그렇게 널리 보급되어 있지 못했다. 아직 한창 젊은 시기인 그 사람들이 컴퓨터를 많이 다루어 본 적이 없으니 그들이 컴퓨터를 잘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지금의 4,50대들이 사회에서 퇴출되는 것은 배운 것이 없어서도 아니고, 못생겨서도 아니다.
단지, 사회 변화의 일부분인 단순한 도구혁명에 의해 개편되는 사회체제에 적응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나이에 컴퓨터를 못 다루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잘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여질 수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변동과 인간의 소외문제에 대한 철학적 담론들을 60년대부터 읽어왔기 때문에, 나는 분명히 이 사회에 적응해야 된다고 느꼈고 누구보다 빨리 적응하려고 애를 썼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위해 투자한다거나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결국 자신의 생존에 대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정글: 김영기 디자인의 길'이란 주제로 'Tao of design'전을 개최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들을 모두 정리하였다고 들었다.
김영기: "오늘은 어제의 오늘과 다른 오늘이다. 내일은 오늘과는 또 다른 오늘이 온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의 하나이다. 보통 내 나이쯤 되면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역사를 정리한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디자인이라는 것은 항상 시작하는 예술과 같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찾아 끊임없이 가야 하는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디자인을 하는 한 사람으로써, 이번 전시를 통해 지금의 작업을 정리한다는 의미보다는 '김영기'가 만드는 디자인에 대해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자 했다. 실제로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은 기존의 것들을 리메이크하고, 새로 만들어낸 것들이 대다수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40년 디자인 인생과 학문적 연구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과 서적, 포스트모던그래픽, 그리고 LCD-ART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고 있다.
정글: 이번에 새롭게 소개된 LCD-ART에 대해 설명해 달라.
김영기: 한국으로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LCD-ART는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와의 만남으로 탄생하는 새로운 개념의 예술작업이다. 첨단기술과 미술의 만남(Encounter)은 곧 인간과 첨단기술의 새로운 관계를 의미하며, 이러한 만남의 사상으로 표현하는 새로운 미술 운동을 ‘LCD-ARTISM’이라고 나는 주장을 하고 있다. LCD 강국으로 발전하고 있는 한국에서 LCD-ARTISM이 시작되는 것은 마땅하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나의 관심에 대하여 아무도 그 개념과 사상, 그리고 동시대성의 새로운 미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서구로부터...’ 가 아니면 귀를 기울이지 않는 오랜 습관과 학습이 원인이겠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자아’의 불신 때문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의식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을 올바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가는 자신을 믿고 응원하여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을 위해 나는 노력할 것이다.
정글: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무엇인가?
김영기: 내 주위의 친구들이나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일이 고생이 되더라도 행복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70년대에 한국의 정체성을 찾겠다고 모든 단체에서 탈퇴했을 때, 나는 사회로부터 스스로 떨어져 나왔다. 나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던 그 시절이 가장 힘이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집대성한 것들을 책으로 낼 때까지는 다른 책을 내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 이유로 92년도에 '한국인의 조형의식'이란 책이 나오기 전까지 나는 한 권의 책도 집필하지 않았다. 그 전까지는 내가 무슨 공부를 하고,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모두들 잘 알고 있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모던하고 서구적인 것들을 선호했고, 그래서 한국적인 것을 고리타분하다고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에 몸을 싣고 서구 문물을 배우러 외국에 유학을 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자기 자신도 모르면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것은 결국 후회하게 될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수많은 콤플렉스만을 가지고 결국 고국에 되돌아 왔을 때, 자신의 허위에 의해 스스로 무너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시기를 견디고 지금에 있기까지 남모를 고민을 참 많이 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 모든 일들이 지금에 나를 이곳에 서있게 만들어준 원동력이 된 것 같다.
정글: 서구의 디자인에 대한 학습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우리 고유의 문화, 즉 전통을 고수해온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김영기: 전통으로 되돌아 간다고 말을 하지 않았다. 전통을 어떻게 다시 해석하여 미래의 새로운 것으로 옮겨 놓느냐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인간은 두 개의 화학공장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어떤 것을 먹더라도 그것을 소화해 내는 소화기간으로, 우리가 서구의 햄버거를 먹어도 그것을 나의 몸에 영양으로 변환되어 받아들여지게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것으로 외국의 것들을 보면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을 통해 새로운 시대로 규정짓는 어떤 사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통과 연결되는 것이다.
고려 청자를 만들어낸 전통이 그대로 조선에서도 청자를 만들어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청자를 만든 사람의 손자가 분청을 만들고, 분청을 만들었던 사람의 손자가 백자를 만들었을 때, 표현된 작품들은 서로 다르지만 시대성에 충실함으로써 창조적인 정신이라는 서려 있는 것이다.
이 시대의 가장 적합한 디자인, 청자, 분청, 백자, 그리고 지금 연결되는 오늘의 신화를 또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고,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전통은 해석해야 할 대상이지 그대로 가져와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런 관점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옛날 단청이나 그리는 것이 한국성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글: 디자인 활동 40년, 한국 디자인사의 살아있는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처음 디자인을 할때와 지금을 비교한다면?
김영기: 힘든 역사를 딛고 근대 사회로 오는 그 과도기에서 우리는 많은 타성에 젖어 왔다.
문명적으로는 잃어버렸던 과학 기술과 20세기를 바꿔놓은 많은 지식 체계들을 습득하고, 새로운 정치제도나 사회 제도를 빨리 수습하고, 채택하는데 있어서 지식과 서구의 룰들을 빠르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는 1977년에 백억 달러 수출을 달성했고, 국민소득 천불이라는 벽을 넘을 수 있었다. 그것은 사회 발전에서 아주 현명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매너리즘이 되어서, 우리나라 고유의 창조성을 개발하는데 큰 방해요인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두 가지를 만회할 과제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궁핍으로의 탈출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그 동안 잃어버린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좋은 디자이너라는 사람은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외국의 것을 잘 들여온 사람’ 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1980년부터 2000년까지는 현대기술을 습득하고, 그것을 20세기 과학혁명과 컴퓨터 혁명, 하이테크 혁명에 적응하기 위해서 그것을 익혔다.
그러다가 2000년부터는 우리 고유의 것을 만드는 ‘독창성(originality)’의 시대가 왔다.
디자인은 노동이 아니다. 나는 심리학에 언어학과 사회학 공부를 하고, 경영학 마케팅을 하면서 이화대학에서 '디자인과 마케팅(1970년)'이라는 과목을 개설해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영희 교수가 쓴 글에도 나오지만, 개인적으로는 70년대에 예언한 많은 것들이 현재에 일어나고 있다.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가르치더라도 학생들은 나보다 훨씬 발전된 세상에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 나의 기준으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교육자는 끊임없이 자기 개발을 하며, 앞으로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주장하는 것이 '발전된 디자인(discovering design) 교육'이다.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교육자로써의 모습이자, 우리나라 디자인 교육의 미래상이라고 생각한다.
정글: 디자인을 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좋은 디자인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는지 말해달라.
김영기: 앞으로는 '좋은 디자인이다. 나쁜 디자인이다'고 말하는 것보다 ‘이 디자인이 옳다, 옳지 않다’ 을 이야기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버버리(Burberry) 에서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 나와도 버버리라는 브랜드 정신으로 볼 때 옳지 않으면,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기 때문이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논하지 않고 그 디자인의 좋고, 나쁨을 판단한다는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옳은 디자인’이라고 하는 것은 틀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야기 함으로써 발전해 나가기 때문이다.
정글: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김영기: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해 끊임 없이 연구하고, 스스로 변화해 나가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연구도 하고, 책도 쓰고,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통해 디자인을 많은 사람들에게 옳게 인식시키는 일들을 할 것이다.